여름 주왕산, 대전사, 계절마다 다른 얼굴의 폭포 3곳
폭포 세 곳을 지나며 만난 우리 가족의 여름 한나절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은 높이 720m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산인데도,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어느 큰 산 못지않게 마음에 오래 남는 곳입니다. 오래전 여름,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에 온 가족이 여름휴가로 다녀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폭포를 하나 지날 때마다 길이 슬쩍슬쩍 꺾이면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대전사 지나 만나는 기암과 맑은 계곡
주왕산 입구에서 관람료 2,800원을 내고 들어서서 천년고찰 대전사를 지나면, 계곡 양옆으로 병풍처럼 늘어선 기암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학소대와 급수대, 석병암, 시루봉 같은 바위들이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계곡을 지키고 서 있는데, 그 사이로 흐르는 물이 얼마나 맑았는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발을 담그면 바닥의 돌멩이 하나하나가 다 비칠 정도였습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계곡을 따라 걷는 내내 그늘과 물소리 덕분에 덥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시원했던 기억입니다.
대전사 보광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되어 있어, 걸음을 잠시 멈추고 둘러보기에도 좋습니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 언제 가면 좋을까요
주왕산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봄이면 잿빛 바위 틈새마다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 삭막해 보이던 암벽에 생기가 돌고,
여름에는 저희 가족이 걸었던 그 계곡처럼 짙은 숲그늘과 폭포 물보라가 더위를 잊게 해줍니다.
가을은 주왕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계절인데, 오색 단풍이 회색 바위와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근처 주산지에서는 150년 넘은 왕버들과 물안개, 저녁노을이 단풍과 겹쳐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진 자리로 기암들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고, 얼어붙은 폭포와 서리가 은빛 세상을 만들어낸다고 하니, 언제 찾아가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곳인 듯합니다.
폭포 세 곳, 그리고 흰 고무신 추억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폭포를 하나 지날 때마다 길이 슬쩍슬쩍 꺾이면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 굽이굽이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용추폭포(제1폭포)를 지나고,
절구폭포(제2폭포)를 지나,
마지막 용연폭포(제3폭포)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는데, 폭포 하나를 만날 때마다 아이가 신기해하며 뛰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 저는 흰 고무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걷다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쉬던 중에, 아들이 물속에서 조그마한 물고기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손으로 잡아보겠다고 첨벙거렸는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만 했습니다.
보다 못한 제가 신고 있던 흰 고무신을 벗어서 그 안에 물고기를 살짝 떠서 담았습니다.
아이는 고무신 안에서 팔딱거리는 작은 물고기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져서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실컷 구경한 다음에는 다시 계곡물에 살며시 놓아주었는데, 그 물고기가 물살을 타고 사라지는 걸 아쉬워하던 아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대단한 볼거리가 아니어도, 맑은 물과 시원한 그늘, 고무신 하나로도 충분한 여행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볼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맑은 물과 시원한 그늘, 그리고 고무신 하나로도 충분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큰맘 먹고 멀리 떠나야만, 혹은 돈을 많이 들여야만 좋은 추억이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폭포를 따라 걷던 그 짧은 오후 한나절이, 세월이 이만큼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날의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지만, 물소리와 그늘, 그리고 흰 고무신 속에서 팔딱거리던 작은 물고기의 감촉만큼은 손끝에 남아있는 듯합니다.
여름에 아이와 함께 시원한 계곡을 찾고 계신 분이라면, 주왕산의 세 폭포 길을 한번 걸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래된 기억 하나 꺼내 보였는데, 공감되셨다면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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